‘문학번역 지망생’에서 ‘준문학번역가’로 (중어권, 여신)
- Author: 국내교육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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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n 15, 2021 6:48 PM
‘문학번역 지망생’에서 ‘준문학번역가’로
여신 (?晨)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3년째 수강 중. 한중문화학 박사과정.
문학과 문화 번역가와 연구자를향해 달리는 중.
시작은단순했다. 번역의 길에서 고군분투하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서 였다. 오랫동안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활동했지만 늘 혼자서 고민하고 컴퓨터와 둘이서 작업했다. 문학번역에 관심이 많지만 어디에도 한중번역을 배울 길이나 토론의 장을 찾을 수 없었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참에 문학번역도 체계적으로 배우고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도 만나보고 싶은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번역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런데 지난 2년 남짓의 시간은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고 위험한 발상을 했는지, 문학에 대해 가져야 할 경외심과 번역가로서 갖춰야 할 자세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가장 감사해야 할 사람은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들이고,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 ‘무엇’을 누가 가장 잘 가르쳐 줄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 온 한국문학번역원에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특별과정의 담당 교수님은 국내 유수 대학교의 중문과 원어민 교수님이다. 중국어에 대한 두터운 이론적 기반과 언어적 감각을 바탕으로, 늘 순수한 중국인 독자의 입장에서 우리의 번역 습작을 읽어 주셨고, 번역물의 가독성을 향상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고 강의하셨다. 나를 비롯한 우리 기수의 학생들은 대부분 현직 통번역사인 탓에 한국어 원문에 지나치게 구애 받아 원문을 1대1로 직역하는 ‘직업병’을가지고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중국인 독자의 눈’이었다. 특별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자신의 번역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 번역’이라는 자만심을 버리고 번역과 동료를 겸손하게 대할 줄 알게 되었다. 특별과정에서 한 학기에 한 번씩 번역 대상 작품의 작가와 만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작가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뿐만 아니라, 젊은 작가의 현실적인 고민과 창작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고, 번역가에 대한 작가의 기대와 당부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소중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문학 번역 지망생’에서 ‘준문학번역가’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상급 과정인 번역아틀리에 교수님은 문학 번역 분야에 십 수년 몸담아 오신 ‘진짜 번역가’이시다. 문학 번역에 확실하게 뜻을 두고 있는 수강생들에게 간절히 필요한 스승이자 선배이다. 특별과정이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라면, 아틀리에는 실전이다. 번역 출판에 관한 노하우, 번역지원사업의 신청방법을 비롯하여, ‘진짜 번역가’가 어떻게 생각하고 작업하는지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수업 시간에 한 문장 내지 한 단어의 적절한 번역어를 위해 한두 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하기도 하고,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수업 후 채팅방에서 토론을 이어가기도 하였다. 날카로운 질의와 비판은 불화 대신 동료애를 조금씩 쌓게 했고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다.
아틀리에 교수님은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번역은 가장 외롭고 인정을 못 받는 일이에요. 우리가 한 단어를 생각하느라 밤새 고민하고, 한 문장을 수정하느라 며칠 고생하는 것을 독자들은 몰라요. 번역이 청산유수처럼 잘 되면 다 작가의 공이고, 그렇지 못하면 다 역자의 탓이에요. 억울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양심껏 해야죠. 무책임한 번역가 때문에 훌륭한 작품을 망치게 할 순 없잖아요.” 이런 순수한 마음은 여기가 아니면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오직 문학에 대한 경외심, 훌륭한 작품을 독자에게 전달하고픈 간절함,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마음만이 번역가의 ‘리비도’인것 같다.
번역 아카데미는 몽상가의 장이다. 우리는 여기서 꿈을 꾸고, 또 세상을 향해 꿈을 꿔도 괜찮다고 조용히 외치고 있다. 이 장이 더 넓어져서 우리 시대의 중심에 자리잡을 날을 기다리며 계속 동참하고 싶다.